손수민 개인전
A Good Knight
2023.12.5 - 12.21
체스는 종종 인간사에 비유된다. 체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경이지만, 전해지는 전설은 그 보다 한 세기 전 인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굽타 왕조의 가장 어린 왕자가 전사하자, 그의 형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위해 전쟁을 달리 표현할 방법으로 체스를 고안해냈다고 전해진다. 이후 실크로드를 통해 전세계에 퍼져 각 지역만의 고유한 체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풍자의 수단으로 사회의 여러 계층을 함축하고 구조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때로는 전장에서 지략을 짜는 생존도구로, 때로는 풍부한 시적 상상력의 소재가 되었다. 또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들이 두각을 나타낸 무대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영상 작품인 <A Good Knight>(2023)와 〈In God We Trust〉(2023)를 중심으로 하는 두 영역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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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민은 기술기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조명하는 미술가다. 누군가 직접 겪은 일이나 한 말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견고해 보이는 사회에 내제된 경계와 균열을 탐색하고, 이로 인한 우리의 욕망, 생동력, 중독, 공허, 고립 등과 같은 경험을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물 등의 매체에 담고있다.
1층
A Good Knight,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9’25”, 2023
가로와 세로 각 8칸의 정사각형으로 이뤄진 판 위의 게임을 지켜보며 나는 이 세상의 질서와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영상은 인간의 상상과 소망을 실현시켜놓은 오토마타를 움직이는 장치들을 통해 체스라는 게임의 규칙과 각 말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어린이들에게 설명한다.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닮은 오토마타는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부여받은 임무만 수행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오토마톤은 무려 기원전 3000년 전을 거슬러 기록되었으니 우리는 오랜 시간 우리를 닮거나 우리를 대신할 조형물을 만들어왔다. 상상력과 기술이 만나 인간을 모방하는 캐릭터에게 생명이 부여되고, 특정한 목적에 따르거나 임무를 수행하는 움직임을 구체화하여 힘의 이동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동력, 즉 어떠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도 모방이 가능한가?
단순히 생명체의 외관 만이 아니라 움직임까지 재현하려는 열망을 지켜보면 정작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사회를 함축시켜놓은 견고하게 직조된 격자무늬 타일 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체스 판 위의 말이 아닌 체스하는 사람이 되어, 판을 내려와 나의 게임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지하 1층
In God We Trust,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11’55”, 2023
“욕망이 얼마나 좋은건데. 욕망은 늘 정답을 알고있지. 욕망은 절대 실패하지 않아.”
작가가 수집한 일상의 이미지를 몽타주 형식으로 재구성한 무빙이미지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증발된 시기에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던 작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출퇴근길과 일터,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수집한 이미지, 사운드, 글로 재구성하였다. 영상의 제목인 “In God We Trust (우리의 신을 믿는다)”는 기축통화로 막강한 지위를 누리는 미국 달러에 쓰여진 문구이다.
예술과 물질 모두 집단 안에서 가치를 갖는다. 돈이란 스스로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고 유용성을 지니는 것도 아니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믿으면 심지어 바다에 빠져 눈에 보이지 않는 돌(Rai stone)도, 그 누구도 만져본 적 없는 코드(Bitcoin)도 화폐로 인정받는다. 잘 만들어진 환상은 사람들이 믿게되고, 믿음이 모이는 순간 엄청난 힘을 가진 현실로 변한다.
체스라는 게임은 폭력적일만큼 투명하게 이 사회의 구조와 규칙, 사회 안에 촘촘히 나눠져있는 계층과 각자의 영역과 역할이 함축하고 있다. 이 게임의 질서와 규칙, 각 말의 역할을 알게되면서 이 사회는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