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선생
이솝의 새로운 작업을 보기 위해 강남역에 위치하는 오피스텔형 작업실을 방문했다. 창문 밖 빌딩 숲 사이로는 점심 시간이 되어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언뜻 비슷한 대화, 표정, 옷차림과 움직임들이다. 이 풍경이 기억에 남는 까닭은 이솝 작품의 일부로 읽혀서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솝은 자연을 만들었다. 이 가짜 자연에는 개미, 새, 나비, 파리, 고동, 조개 그리고 메추리알이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일부분 우리 일상의 풍경과 겹친다.
그동안 이솝이 걸어온 작가적 행보를 생각하면 이번 전시가 아주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이솝은 꾸준히 여러 종류의 재료들을 조합하여 유기적인 생명체와 이야기들을 탄생시켰다. 윈도우에 설치한 작품 <메갈로 폴리스>의 경우, 새로운 버전이긴 하지만 예전의 관심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넓은 맥락에서 작가라는 사람들은 각자가 주목하는 의미를 탄생시키는 생산자들이지만, 이솝은 그 중에서도 생명의 신비와 존재를 물질적으로 증명하고자 애써 온 괴짜 과학자다.
이번에 이솝이 만든 생물들은 언뜻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생명체들이 이솝의 작품에서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그저 표피적인 형체의 재현에만 머물지 않아서다. 이솝의 이번 작품은 개체들이 여럿이 모여있는 군상群象을 표현했다. 이 모습의 적절한 표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찾을 수 있다. “모두 한데 뒤섞여서, 어지러이 흩어졌다 가지런히 정렬하고, 치달리고, 돌아가고, 달아나고, 덤벼들고, 쑤석거려 시비걸고...”
이러한 군집들은 캔버스 위에서 비정형적으로 흩어지거나, 나뭇 가지위를 기어 오르고, 새로운 형체로의 변이, 그리고 길쭉한 그물망에 촘촘히 매달려서 일종의 기둥 모양으로도 조직되었다. 특히, 전시장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두 종류의 그물망은 언뜻 조개와 고동을 방금 바다에서 잡아 끌어올린 듯한 생생한 느낌과 동시에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화석이나 미니어처처럼 싸늘한 분위기도 가지고 있다. 그물망이 담고 있는 각각의 생태 공간은 수공으로 작업한 층층의 패턴을 따라 나름의 역동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그물망의 형상은 다시 제3의 생명체, 이를테면 해파리와 같은 바다생물을 연상시킨다. 한마디로 괴짜 과학자가 만든 생명체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이 여기서는 무용하다는 말이다. 이솝은 이번 작업을 위해서 어업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트롤trawl을 연구한 논문을 참조했다고 한다. 트롤은 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면서 해저에 사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인데, 간단하게 손으로 조작하는 것부터 어선에서 모터로 조작하는 대형 그물까지 그 세계도 무궁무진 하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사실 이솝의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솝이 주목하는 지점은 트롤의 역사적인 계보가 아닌 자연의 탄생 과정에서, 인간이 잉태와 번식을 지속하기 위해 고안해낸 노력의 방식이다.
인류 출현의 역사를 이솝의 작업과 연결지어서 살펴보면 다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고,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갓 진화한 원인류는 250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한다. 채집과 수렵을 시작한 석기시대에 출현한 원인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도구를 사용한다. 이 도구의 재료는 돌맹이였다.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진 인류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동시에 돌맹이를 깨서 사냥용 도구를 만들던 250만년 전의 원인류가 오늘날 별도의 연료 없이 지구 밖에서 추진되는 우주 '햇살돛'을 만들기까지 진화해 왔는지에 관한 역사를 아주 잠깐만이라도 생각해보면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굉장히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즉, 우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굶지 않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본성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왔다. 인간 본성의 지속성 위에 이성의 힘이 꽃을 피운 낭만적인 과거와 미래또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은 늘 시험대 위에 있다.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극복해야할 한계점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수위' 조절을 위해 여러가지 사회, 문화, 과학적인 장치들이 고안되었고, 이 역시 발전의 과정을 거쳐왔지만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연은 채집과 수렵이 전부였던 원인류가 살던 자연과는 많이 다르다. 우주와 지구라는 자연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자연과 인간이 맺어 온 관계의 방식이 변화했다. 하지만 인류가 자연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의 범위는 그 근본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식량과 에너지 자원을 자연으로부터 무한히 얻을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과 동시에 식량과 자원이 언제 고갈될 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시달려왔다. 특히 이 불안감은 인류가 스스로 자연을 규제하거나 작동하고자 하는 욕망의 원천이 된다. 결과적으로 자연의 질서에 의해 수동적으로 진화해 온 인류는 이제 선택적인 진화가 가능한 시대를 이룩했다.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고, 무의식을 탐구하는 뇌과학의 연구를 통해 삶을 디자인 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인간은 여전히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육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고 노쇄하는 물질로 한정되고, 영혼은 뇌와 마음으로 설명되는 비물질적 개념이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사람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만나, 관계의 지속을 위한 질서를 찾을 때 그만의 자연은 진짜 생명을 얻는다. 대략 이런 원리가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를 팽팽하게 지속시켜온 긍정성인지 모른다. 이솝이 만든 군상들이 더불어 조화를 이룰 때 왠지 그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솝의 작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미덕은 잠깐이나마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데 있다. 개미는 인간처럼 분업을 하고, 노동력 확충을 위해 이웃 마을의 알을 가져다가 부화시켜서 노예로 부리는 등 삶의 모습이 인간과 가장 비슷한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개미는 인간과 달리 두려움, 즐거움, 분노 등의 감정이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공감 능력 덕분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발달된 생명체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개미에게서 배울점은 오히려 이런 비슷하고 또 더 뛰어난 개미를 인간과 비교하는 비과학적인 생각에 있다. 개미보다 훨씬 몸체가 큰 인간 역시도 결국 인간 고유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하찮고도 귀한 자연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다.
_권진(큐레이터)
이솝 개인전
돌을 깨는 방법
2015.5.22 -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