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풍상의 첫 번째 개인전 <십 년>은 작가가 미술에 뜨거웠던 시절부터 그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시기를 지나 다시 그 가까이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고 있다. 다분히 사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그의 회화 작품들은 한 사람의 성장 기록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는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외조부모,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어머니 형제들, 중국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또 미국으로 이주한 아버지 등 3세대 걸친 중국 대가족의 일원으로 자랐다. 그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가족사를 항해하며 그들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는 유난히 유대를 강조하는 가족 사이에서 부모가 체험하고 기억하는 중국 전통과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반 중국인이자 반 미국인으로 살아왔다. 작가에게 중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찾는 일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이민자인 부모 세대의 기억, 행동,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전해진 관습적인 중국 문화의 상징들이 그와 자신의 뿌리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어 작업의 소재로 자리잡는다.
그는 초기작에서 그러한 상징적 이미지들-붉은 봉투, 물고기, 손, 한자, 국수, 포장용 중국 음식 등-을 화면 안에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우리는 바다를 건너왔다>(2006)는 2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을 위한 노래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하여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이민의 삶을 표현한다. 화면의 오른쪽에 자리한 물에서 뭍으로 나온 물고기는 본래의 장소에서 벗어났지만 결국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 즉 중국 문화에도 미국 문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 작가 본인의 감성을 대변한다. 미국에서 1882년부터 1943년까지 중국인 노동자의 이민을 금지한 차별적 법률을 가리키는 철조망,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폄하적 상징인 일회용 음식 상자도 배경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거대한 물고기는 새로운 장소에서 당당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듯하다. 왼편의 손은 이 내용이 인간의 이야기임을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손의 모티브는 <자화상>(2006)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작가는 손이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외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중국의 미신을 믿는 그의 할머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손을 만지고 손금을 보며 운명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예를 들면 손이 부드러운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성공과 부를 누릴 수 있지만, 수 없이 끊어진 손금을 가진 사람은 고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미신이다. 작가는 법학대학원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후에 이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어두운 정장을 입고 중국의 “행운의 붉은 봉투”에 손을 내미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돈을 좇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냉소를 표현했다.
작가는 이후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법률회사에서 근무할 때 미술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드로잉을 하고 작은 그림들을 그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시간 이어온 작은 불씨에 불을 지펴 다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십 년 동안 가족의 중심인 조부모 세대는 늙고 쇠약해졌고, 그는 처음으로 가족의 죽음도 직면하게 되었다. <레퀴엠>(2015)은 작가의 이모부가 막 몸져 누웠을 때 생긴 잊혀지지 않는 기억에 관한 작품이다. 작가는 그 기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외할머니는 중국 여행에서 큰 가방을 들고 돌아왔는데, 그 안에는 “영혼의 돈”이라는 특별한 종이가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이모부에게 병을 가져온 악귀를 달래기 위해 우리가 이 돈을 모두 태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모 집에 모여서 집앞 진입로 가운데 통을 하나 놓고 지폐에 불을 붙여 던져넣었다. 큰 불길에서 작은 불씨들이 날아올라 어두운 밤 공기 속으로 사라지자, 가을의 한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중국 미신에 따라 모든 지폐를 태웠을 때 우리 모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영혼이 우리가 그들을 보고 있다고 느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모부는 죽음을 맞이했고, 가족들은 그를 기억하고 그의 영혼을 부르는 전통적인 의식을 치뤘다. <모임>(2015)은 가족을 잃은 것에 대한 숙고, 현존과 부재에 관한 재현이다. 흰색 천을 덮은 식탁에 생전에 이모부가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놓고 그의 영혼이 다시 방문하기를 기다리며 그는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의 기억에 대해 작가는 현존(가족들, 음식)과 부재(이모부)간의 긴장을 회화로 담아내려 했다.
작가는 말한다. “<자화상>은 돈을 좇는 모습을 그리고, <레퀴엠>은 그것을 태워서 재로 만드는 모습을 그린다. <자화상>이 21살의 반농담 같은 미래의 모습이라면(실제로 사실이 되었지만), <레퀴엠>과 <모임>은 시간의 가치와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일깨워주는 비정한 경고이다. 또 다른 십 년을 낭비하지 말라는.”
이 전시는 한 개인의 가족과 가족의 죽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다분히 사적인 기록의 회화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자리이다. 이 작가의 개인적 기록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중간자적인 정체성을 통해 중국 문화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때문이다. 그것은 여전히 중국의 전통과 관습을 따르고자 하는 부모 세대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국에 대한 기억이 없는 자녀 세대간의 관계와 그 필연적 어긋남에 기인한다. 부모의 기억과 망각을 통해 뒤섞이고 재구성된 중국적 관습은 실체 없이 전해지는 전설에 가깝다. 작가는 이를 생소하고 낯선 환상으로 대하고 작품의 주제로 끌어온다. 그는 자칫 진부하게 보일 수 있는 소재를 자신의 예민한 서정으로 낯설게 만들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도록 작동시킨다.
_이성희(기획자)
디자인 : 강동형
조셉풍상 개인전
십년 Decade
2015.10.10 -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