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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me somewhere nice

reflecta of reflec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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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마치 나쁜 습관처럼, 보기보다 읽기를 먼저 한다. 작가노트를, 인터뷰를, 평론을, 전시서문을, 작품캡션을, 작가이력을. 정작, 보는 것보다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 컴퓨터의 즐겨찾기 목록에는 오롯이 보고자 하는 욕구가 하나 둘 쌓여갔다. 굳이 읽지 않아도 좋을 그 이미지는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더욱 딱딱해졌다. 그저 보기만 해야 더욱 말랑해지는 그 데이터를 모니터에 띄워 드래그하고 확대하면서 탐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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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들은 매끄럽거나 거칠고, 빛나거나 깜깜하고, 휑하거나 빽빽하고, 시끄럽거나 적막하고, 시리거나 투명하고, 저미거나 평온하고, 서걱거리거나 팽팽하고, 여위거나 부풀고, 스미거나 푸석거렸다. 어떤 장면이든 입김을 세게 불면 형용사만 후드득 떨어질 사진들이었다. 장면 속에 떠도는 명사를, 동사를, 주어를, 목적어를 끄집어내 읽어봤자 부질없었다. 형용사로만 흩어질 사진들은 이어 붙여도 문장이 되지 않았다.퍼즐을 맞추듯 사진들의 서로 닮은 홈을 따라 끼워도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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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진과 사진 사이에 문장이 생겨나고,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에 감탄했다. 그 이후부터 미처 읽어내지 못한 문장이 있을까 내심 불안해하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듣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렸다. 내가 읽지 못한 문장이, 내가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작가노트에, 인터뷰에, 평론에, 전시서문에, 작품캡션에, 작가이력 그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 사이에 꼭 문장이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이야기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잊고 있었다. 끝내 완성된 문장과 완결된 이야기로 결박되지 않을 사진들은 세상의 파편과 파편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리고 읽을 수 없는 사진들은 불투명한 의미가 아닌 투명한 감각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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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눈으로 건져낸 리플렉타의 사진들을 살피면서, 보기에 앞서 읽으려는 습관이 얼마나 무색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사실, ‘리플렉타의 사진’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건 어폐가 있다. 사진을 다루는 작업자 20여 명이 모인 리플렉타는 구성원마다 사진을 찍는 대상이나 스타일이 무척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끔씩 함께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드는 일을 도모할 뿐, 모임에는 뚜렷한 목적성이나 지향점이 없다. 다분히 느슨하고 자유로운 커뮤니티인 리플렉타는 그 정체성을 하나로 정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리플렉타의 사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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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굳이 ‘리플렉타의 사진’의 특징을 꼽는다면, 관심사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자기 주변의 사람과 장면에 머문다는 것 그리고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스트레이트하게 촬영하면서 결과물을 쌓아간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사적인 다큐멘터리나 스냅샷 등 몇몇 스타일을 운운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개운치는 못한 느낌이다. 어쩌면 리플렉타를 관통하는 연결고리는 작업의 대상이나 방식보다 오히려 다른 지점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칠게 말해, 그들은 대체로 ‘내 눈에 예쁜 것’ 그리고 ‘내 눈에 걸리는 장면’들을 찍는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눈이 예민하게 반응한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셈이다. 한편으론 그 반응 순간을 담을 때, 규격화된 문법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카메라나 프로세스를 중요시하는 태도 또한 서로 닮아 보인다. 이처럼 ‘예민한 눈’과 사진을 대하는 ‘솔직한 태도’가 리플렉타를 대변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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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처음 들면, 오로지 눈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 바깥 세상을 처음 본 아이와 같다. 개미를 보면 무작정 개미를 따라가고, 구름을 보면 무작정 구름을 따라가는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눈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모든 장면을 보고 싶고, 매 순간을 찍고 싶은 욕망이 장전된다. 어이없게도 카메라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헛된 믿음까지 생긴다. 도대체 그 대책 없는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과연 어디까지 보고 나야 만족할 수 있을까. 예민한 눈을 따라 움직이는 리플렉타의 솔직한 사진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걸 보고 싶고, 매 순간을 찍고 싶어했던 그 욕망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욕망이 강렬할수록 어그러지고 뒤틀리기 쉽다는 걸, 이제 어렴풋이 안다. 끝내 세상 모든 것을 찍을 수 없고, 모든 순간들은 그저 손에서 빠져나간다는 것도. 비록 불가능하고 실패가 예정된 욕망이지만,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때를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미련할 정도로 솔직했던 때가 또 있을까 싶다. 내가 본 것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절실했으니까.

_박지수(프리랜스 에디터)

코디네이터 : 남승연

디자인 : 톱니귀

도움 주신 분들 : 이기원 홍진훤 홍철기

후원 : Print Space THEO

리플렉타 오브 리플렉타

기획 : 박지수

​참여작가 : 강민구, 니나안, 레스, 박의령, 솔네, 윤제원,

이강혁, 이승연, 이윤호, 이차령, 최나원, 한다솜

2016.9.9 -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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